[백세시대 금요칼럼] 우리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우리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4.03.25 10:04
  • 호수 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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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가든디자이너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전통의 미 필라델피아 플라워쇼

벼르고 별러 3월초 참관해보니

원예 기술력, 식물 디자인 놀라워

인간이 식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선조로부터 학습된 결과 아닐까

미국 펜실베니아 컨벤션 센터.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벌써 줄이 길다. 이미 티켓을 모두 예매한 사람들인데도 일찍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줄을 선 것이다. 나와 우리 일행도 서둘러 줄의 끝자락에 붙었는데, 우리 뒤로도 순식간에 사람들이 뒤따랐다. 세계에서 가장 일찍 열리는 플라워쇼, 미국 ‘필라델피아 플라워쇼’ 장이다. 

10년이 넘게 이 쇼를 보고 싶어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올해 2024년 이 쇼를 보게 됐다. 대부분의 플라워쇼가 5월 이후에 개최가 되는 데 반해 필라델피아 플라워쇼는 상당히 이른 봄 3월 초에 열린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챌시 플라워쇼의 명성만큼이나 이 쇼의 자긍심도 대단하다. 일단 이 두 쇼는 식물과 정원 관련 쇼라는 것은 같지만 챌시 플라워쇼의 개최 장소는 야외 공원이고, 필라델피아 플라워쇼는 실내 전시 공간을 이용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코엑스와 같은 곳이다. 

이 쇼가 필라델피아 주민들은 물론이고 미동부 지역 사람들에게 자랑인 것은 지난 1829년부터 매년 개최를 시작해 1917~1918년 세계 1차대전, 1942~1946년 세계 2차대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서도 이런 자긍심은 분명하게 보인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서른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쇼를 빼놓은 적이 없다고 나에게 자랑도 하신다. 

긴 겨울을 보내고 아직 바깥세상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봄을 기다리고 기다린 사람들은 쇼장 문을 열자마자 찬란한 올해의 봄을 먼저 만나게 된다. 맨 처음 등장해 가장 많은 힘을 준 ‘웰컴 가든’은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튤립, 수선화, 델피니움부터 이미 꽃을 피운 아름드리 벚나무가 까만 연못 물에 반영까지 되면서 압도적인 풍경이다. 기가 막히게 쇼에 맞춰 꽃을 피워낸 원예 기술력에도 감탄이지만 색과 형태로 조합된 식물 디자인의 수준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모든 식물이 꽂을 잘라서 쓴 것이 아니라 직접 흙을 넣고 심은 현장이다. 

3시간이 넘도록 정신없이 나와 일행은 다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참아가며 참으로 부지런히 플라워 쇼장을 훑어보러 다녔다. 그러다 쉼터에 잠시 앉아 이번 여행에 동행하게 된 친동생에게 생전 처음 와본 플라워쇼가 어떻냐고 물었다. 

동생은 식물 혹은 정원에는 관심조차 없고 자신은 도시의 반짝임이 좋다며 나의 시골 생활을 의아하게 볼 정도로 나와는 사뭇 다르다. “언니, 나는 세상에 이런 쇼가 있는 줄 몰랐네. 식물은 내가 하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너무 좋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내가 정원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처음이 딱 이랬기 때문이었다. 식물이 뭔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좋았다. 사실 나 역시도 서울에서 초등학교부터 모든 성장기를 다 보낸 탓에 도시는 시골보다 훨씬 더 친근한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내가 이토록 식물과 정원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당이 있는 집을 갖게 되고, 그곳에 식물을 심고 가꾸며 ‘세상에 이토록 몸과 마음이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는 열풍이 느닷없이 폭발적으로 나에게 찾아온 셈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은 여전히 도시의 반짝임이 좋다는 동생도 조만간 나를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필라델피아 플라워쇼를 포함해 이왕 간 김에 뉴욕의 많은 도시공원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마친 후 보름 만에 집에 돌아오니, 내내 빈집을 지킨 식물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방울철쭉은 이미 분홍 꽃이 만개했고, 호주매화 사랑초, 백묘국, 후마타 고사리 등 집안 식물들이 큰 손상없이 잘 지내고 있음에 안심했다. 

우리에게도 플라워쇼라는 개념이 이미 도입됐다. 하지만 그 의미가 좀 다르게 진행 중이기도 하다. 플라워쇼는 말 그대로 신품종 식물을 선보이는 장이다. 세계 플라워쇼에서는 해마다 지금까지는 탄생한 적이 없는 신품종의 식물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세상에 없던 검은 튤립을 만나게 되고, 오묘한 색깔과 모양의 수선화, 장미, 붓꽃도 구경하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구입할 수 있는 장이 바로 플라워쇼이다. 이 핵심이 사라진 채 단순히 구경만 하는 플라워쇼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식물을 좋아할까? 깊게 생각해보면 이건 우리 선조 때부터 내려온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식물로부터 먹을거리를 만들고, 식물로부터 치료제를 뽑아내고, 식물을 이용해 집도 짓고, 생활용품도 만들어내니 이 식물을 잘 가꾸고 사랑해 줄 수밖에 없다. 

도시 생활이 깊어진 요즘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집안에 두면, 온도와 습도, 환기를 적당하게 하여 우리가 좀 더 건강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잘 키우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식물을 가까이 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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